2005년 10월 13일 날치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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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5년 10월 13일 날치크 사건은 2005년 10월 13일 러시아 카바르디노-발카르 공화국의 도시 날치크에서 발생한 무장 공격 사건이다. 이 공격으로 특수 작전 센터, 러시아 연방 보안국(FSB), 경찰서 등 여러 시설이 공격받았으며, 러시아 정부는 야르무크 자마아트 소속의 무장 세력이 공격을 감행했다고 발표했다. 사건 발생 후 러시아 정부는 도시 봉쇄 및 진압 작전을 펼쳤고, 인질극과 교전이 벌어졌다. 사건 이후 수십 명이 구금되었고, 일부는 고문 혐의를 받았으며, 재판이 진행되었다. 러시아 정부는 외국 정보 기관의 자금 지원 의혹을 제기했으며, 사상자 수에 대한 양측의 주장은 큰 차이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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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13일 날치크 사건 - [전쟁]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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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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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2005년 10월 13일 오전 8시 20분 – 2005년 10월 14일 오후 2시 (27시간 40분) |
장소 | 날치크, 카바르디노-발카르 공화국, 러시아 |
결과 | 러시아의 승리 |
교전 세력 | |
교전 세력 1 | |
교전 세력 2 | 야르무크 자마아트 캅카스 전선 (무장 단체) |
지휘관 및 지도자 | |
교전 세력 1 | 사이들리 시브주호프 |
교전 세력 2 | "총괄:" 사령관 샤밀 바사예프 무사 아르투르 무코제프 "작전:" 왈리 안조르 아스테미로프 에미르 일리야스 고르치하노프 |
병력 규모 | |
교전 세력 1 | 1,500명 (정규군), 500명 (특수 부대) |
교전 세력 2 | 80–300명 (전투원) |
사상자 및 피해 | |
교전 세력 1 (러시아 주장) | 최소 35명 사망 (경찰 및 군인), 129명 부상 |
교전 세력 1 (바사예프 주장) | 140명 사망, 160명 부상 |
교전 세력 2 (러시아 주장) | 89명 사망, 36명 포로 |
교전 세력 2 (바사예프 주장) | 41명 사망 |
민간인 | 최소 14명 사망, 111명 부상 |
관련 정보 | |
분쟁의 일부 | 제2차 체첸 전쟁 및 카바르디노-발카르 반군 |
2. 공격
Agentura에 따르면, 2005년 10월 13일 오전 9시경 교전이 시작되었다.[2] 최초 공격 목표는 특수작전센터 T(Center T) 대테러 내무부 산하 부서, 연방보안국(FSB), FSB 국경 경비대, OMON 기동대 밀리차 부대, 도로 순찰 경찰 연대(PPSM), 중앙 정부 연방 세무국, 징병 및 입대 사무소, 날치크 공항, 러시아 교도소 시스템의 지역 본부 등이었다.[2]
총포상 아스널(Arsenal)이 강도 피해를 입었고, 3개 경찰서도 공격받았다. 조직 범죄와 싸우는 KBR 내무부 산하 부서 공격은 저지되었다. 날치크 전역에서 대중교통이 중단되었고, 정오까지 산발적인 교전이 계속되었다.[2]
오후 1시 20분, 아르센 카노코프 카바르디노-발카르 공화국 대통령은 공격자 일부가 생포되었고, 이들이 야르무크 자마아트라는 급진 이슬람주의 단체 소속이라고 발표했다.[2] 자유 유럽 방송은 이 단체 이름이 7세기 야르무크 전투에서 아랍 군대가 비잔틴 제국 군대를 격파한 사건을 언급한 것일 수 있다고 추측했다.[3]
오후 1시 45분, 러시아 연방 보안국(FSB) 소식통에 따르면, 공격자들이 FSB 건물을 점거하려 했지만 격퇴되었다. 반군 저격수가 FSB 직원 1명을 사살하고 4명을 부상시켰으며, 건물은 심각하게 손상되어 화재가 발생했다.[2] 오후 2시 30분에는 공격자들에게 포위된 건물에 있던 경찰 그룹이 탈출했다.[2]
오후 3시, 리아 노보스티는 알렉산드르 알렉세예비치 체칼린 내무부 장관의 말을 인용,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날치크에 대한 전면 봉쇄를 명령했다고 발표했다. 체칼린은 내무부, 국방부, FSB가 합동 작전을 수행 중이며, "무기를 들고 무장 저항을 보이는 사람은 누구든 사살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이른 오후 드미트리 코자크 블라디미르 푸틴의 남부 연방 관구 특사가 날치크에 도착했다. 자유 유럽 방송은 "상황이 정상화되고 있다... 적어도 대규모 소요와 공격은 진압되었다"라고 전했으나, "날치크 여러 지역에서 폭발이 보고되었다"고 보도했다.[3] 살아남은 반군 세력 대부분은 산으로 후퇴했다.
다음 날, 연방 지원군에 포위된 부상자 등 소수 무장 괴한들이 경찰과 민간인 인질과 함께 점령된 건물(경찰서, 기념품 가게 포함)에 숨어 있었지만, 특수 부대에 의해 사살되었다. 러시아 관리에 따르면, 이 교전 과정에서 인질 사망은 없었다.[4] 10월 14일 아침, 공격자들은 날치크 외곽 카사냐에서 경찰차에 발포, OMON 진압 경찰관 2명을 살해했다.[4]
10월 14일 정오, 겐나디 구빈 지역 정부 수장은 "반란군 저항 거점이 모두 진압되었고 인질들이 풀려났다"고 말했다.[4] 러시아 정부는 날치크에 정규군 1,500명과 특수 부대 500명을 배치해 도시 통제권을 되찾았다.
2. 1. 교전 발발
러시아 뉴스 소스 Agentura에 따르면, 2005년 10월 13일 오전 9시경에 교전이 시작되었다.[2] 최초 공격 목표는 다음과 같았다.[2]- 특수작전센터 T(Center T) 대테러 내무부 산하 부서
- 연방보안국(FSB) 국가 보안 기구
- FSB 국경 경비대
- 준군사 조직인 OMON 기동대 밀리차 부대
- 도로 순찰 경찰 연대 (PPSM)
- 중앙 정부 연방 세무국
- 징병 및 입대 사무소 (''Voyenkomat'')
- 날치크 공항
- 러시아 교도소 시스템의 지역 본부
곧이어, 총포상인 아스널(Arsenal)이 강도 피해를 입었고, 3개의 경찰서 역시 공격을 받았다. 조직 범죄와 싸우는 KBR 내무부 산하 부서에 대한 공격은 다행히 저지되었다. 날치크 전역에서 대중교통이 중단되었고, 산발적인 교전은 정오까지 계속되었다.[2]
2. 2. 정부 발표 및 교전 지속
오후 1시 20분, 아르센 카노코프 러시아 카바르디노-발카르 공화국 대통령은 모스크바의 에코를 통해 공격자 중 몇 명이 생포되었다고 발표했다. 그는 또한 지금까지 생포된 모든 전투원들이 야르무크 자마아트로 알려진 급진적인 이슬람주의 단체의 일원이라고 주장했다.[2] 자유 유럽 방송은 이 단체의 이름이 7세기의 야르무크 전투에서 아랍 군대가 비잔틴 제국 군대를 격파한 사건을 언급한 것일 수 있다고 추측했다.[3]오후 1시 45분, 모스크바의 에코가 인용한 러시아 연방 보안국(FSB) 소식통에 따르면, 공격자들이 FSB 건물을 점거하려 했지만 격퇴되었다. 반군 저격수가 FSB 직원 1명을 사살하고 4명을 부상시켰으며, 건물은 심각하게 손상되고 화재가 발생했다.[2]
오후 2시 30분, 공격자들에게 포위된 건물에 있던 경찰 그룹이 탈출에 성공했다.[2]
오후 3시, 리아 노보스티는 알렉산드르 알렉세예비치 체칼린(내무부 장관)의 말을 인용하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날치크에 대한 전면적인 봉쇄를 명령했다고 발표했다. 체칼린은 내무부, 국방부, FSB가 합동 작전을 수행하고 있으며, "무기를 들고 무장 저항을 보이는 사람은 누구든 사살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이른 오후까지 드미트리 코자크 블라디미르 푸틴의 남부 연방 관구 특사가 로스토프나도누에서 날치크에 도착했고, 자유 유럽 방송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상황이 정상화되고 있습니다... 적어도 대규모 소요와 공격은 진압되었습니다. 오늘 법 집행 기관을 공격한 무장 세력은 흩어졌습니다. 저항의 잔당은 몇 개, 정확히 말하면 두 개만 남아 있습니다. 불행히도 인질이 잡혀 있는 내무부 제3국 부근에서 아직 전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그곳에서 작전이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더 이상 위협은 없습니다."[3] 그러나 자유 유럽 방송은 또한 러시아의 채널 1 (러시아)(ORT) 국영 텔레비전 채널의 보도를 인용하여 "오후 중반까지 중앙 시장 근처에서 맹렬한 총격전이 계속 들렸다"고 전했으며 "날치크의 여러 지역에서 폭발이 보고되었다"고 보도했다.[3]
결국, 살아남은 대부분의 반군 세력은 산으로 후퇴했다.
2. 3. 2일차
연방 지원군에 의해 포위된 부상자들을 포함한 소수의 무장 괴한들은 경찰과 민간인 인질들과 함께 점령된 건물(경찰서와 기념품 가게 포함)에 숨어 있었지만, 다음 날 특수 부대에 의해 사살되었다. 러시아 관리에 따르면, 이 마지막 교전 과정에서 인질은 사망하지 않았다.[4] MSNBC에 따르면, 10월 14일 아침, 공격자들은 날치크 외곽의 카사냐에서 경찰차에 발포하여 OMON 진압 경찰관 2명을 살해했다.[4]MSNBC는 또한 다음 날 아침 날치크 시내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 피로 얼룩진 시신들이 금요일에도 거리에 널려 있었다. 한 구는 제2경찰서와 지역 대테러 센터 입구 근처에 있었는데, 그곳의 대부분의 창문이 날아가고 심지어 밖의 전차선까지 내려져 있었다. 시신 7구가 거리에 널브러져 있었고, 대부분 끔찍한 머리 부상을 입었다. 중무장한 경찰들은 운동복과 운동화를 신은 채 시신들, 아마도 무장 세력의 시신들을 쿡쿡 찌르고 발로 찼다. 지역 연방 보안국 건물 밖에서는 중무장한 여러 장교들이 사탕, 물병, 검은색 티셔츠를 꺼내 무장 세력의 것으로 보이는 검은색 배낭을 조심스럽게 뒤졌다.[4]
10월 14일 정오까지, 지역 정부 수장 겐나디 구빈은 인테르팍스에 "반란군의 모든 저항 거점이 진압되었고 인질들이 풀려났다. 이제 보안군은 숨어있는 테러리스트를 찾기 위해 도시를 수색하고 있다."라고 말했다.[4] 러시아 정부는 날치크에 1,500명의 정규군과 500명의 특수 부대를 배치하여 도시의 정부 통제권을 되찾았다.
3. 여파
2005년 10월 13일 날치크 공격 이후, 법 집행 기관은 수십 명을 구금했다. 구금된 사람들 중 다수는 고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최소 한 명이 "실종"되었다. 러시아 및 국제 인권 단체는 이 조사를 광범위하게 비판했다.[6] 언론은 고문 흔적이 있는 구금자들의 사진을 게재했다.[5]
샤밀 바사예프는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주장했으며, 잉구쉬인 무장세력 지도자 일리야스 고르크하노프가 현장 공격 지휘자 중 한 명이었다고 한다.[4] 이 습격은 지역 내 무슬림에 대한 수개월 간의 박해, 즉 경찰의 임의적인 구금과 고문, 그리고 모스크 대량 폐쇄에 대한 대응으로 보도되었다.
2007년 10월, 공격 가담 혐의를 받는 59명에 대한 기소 관련 예비 심리가 시작되었으나, 배심원단 구성 문제로 재판은 1년 이상 지연되었다. 2009년 2월, 법원은 배심원 재판을 포기하고 세 명의 재판장으로 재판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7] 2009년 3월 날치크에 특별히 건설된 삼엄한 경비 시설에서 본 재판이 시작되어 2011년 6월까지 계속되었다. 피고인들은 법정 심리를 이용하여 경찰 및 보안 부대를 위협하기도 했다.[9]
3. 1. 공격자 신원 및 규모
테러리스트 규모에 대한 추정치는 다양했다. 러시아 측은 80명에서 300명 사이로 추정했지만, 바사예프는 217명의 전투원이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타스 통신에 공격자들이 각기 다른 목표를 가진 10개의 이동 그룹으로 활동했다고 밝혔다.[4]
MSNBC는 날치크에서 안드레이 노비코프 내무차관이 기자들에게 한 발언을 보도했다. 노비코프가 밝힌 내용은 다음과 같다.[4]
- 일리야스 고르크하노프가 공격을 지휘했으며 사망했다.
- 무장대원 3분의 2가 지역 주민이었다.
- 전체 공격자는 최소 100명이었다.
- 대부분 20세에서 30세 사이였다.
친크렘린 체첸 총리 람잔 카디로프는 날치크 테러 배후에 체첸인은 없다고 주장했다.
> 만약 체첸인들이 있었다면 그렇게 빨리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 자신의 사람들이 거기에 있었다. 약한 녀석들이었는데, 그래서 빨리 끝났다. 그들은 두 시간 만에 그들을 이겼다.
3. 2. 체포
습격 이후, 법 집행 기관은 수십 명을 구금했다. 구금된 사람들 중 다수는 고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습격 이후 최소 한 명이 "실종"된 것으로 보고되었다. 조사 결과, 구금된 사람들 중 일부는 테러, 살인, 무장 반란, 경찰관의 생명 침해 등 9가지 혐의로 기소되었다. 구금된 사람들에 대한 고문 사례는 다수 문서화되었으며, 이 조사는 러시아 및 국제 인권 단체로부터 광범위하게 비판을 받았다.[6] 언론은 고문 흔적이 있는 구금자들의 사진을 게재했다.[5]코메르산트는 2006년 10월 28일, 구금된 사람들의 변호사를 인용하여, 그들 중 13명에 대한 혐의가 사면으로 인해 취하되었으며, 나머지 56명에 대한 재판 전 구금 기간은 2007년 4월까지 연장되었다고 보도했다. 습격에 연루된 혐의를 받는 다른 39명은 여전히 도주 중이었다.
2006년 6월 27일, 안조르 아스테미로프의 평생 친구이자 오몬 본부 공격을 주도한 혐의를 받는 전 관타나모 만 수용자인 루슬란 오디제프는 체포에 저항하다가, 또 다른 용의자인 안조르 텐기조프(Anzor Tengizov)와 함께 날치크 시내, 쇼켄주코프 거리의 아파트 단지에서 사망했다. 그 아파트 단지는 지역 (공식) 모스크를 마주보고 있었다.
3. 3. 책임 주장
습격 후, 새로 임명된 카바르디노-발카르 공화국 대통령 아르센 카노코프는 지역 경찰의 잔혹한 진압이 습격의 적어도 부분적인 원인이 될 수 있음을 공개적으로 인정했다.[6]날치크 공격은 베슬란 학교 인질 사태가 발생한 지 1년 조금 넘은 시점에 일어났으며, 샤밀 바사예프는 이 사건에 대한 책임도 주장했다. 잉구쉬인 무장세력으로 잉구쉬 자마아트의 지도자인 일리야스 고르크하노프가 현장 공격 지휘자 중 한 명이었다고 한다.[4] 바사예프는 러시아 보안군이 공격 5일 전에 정보를 입수하여 날치크의 보안이 강화되었지만, 강화된 보안에도 불구하고 공격이 취소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습격은 지역 내 무슬림에 대한 수개월 간의 박해, 즉 경찰의 임의적인 구금과 고문, 그리고 모스크 대량 폐쇄에 대한 대응으로 보도되었다.
2006년 4월, 다게스탄 공화국, 잉구셰티야 및 카바르디노-발카르 공화국에서의 공격 증가와 그곳의 무장세력이 체첸 테러리스트와 행동을 조율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최고 반군 사령관인 도쿠 우마로프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 우리에게는 [체첸 외] 세 개의 전선이 있습니다 - 카바르디노-발카르 공화국, 잉구셰티야 및 다게스탄. 다게스탄과 카바르디노-발카르 공화국의 무장세력은 군사 아미르와 소통한 다음 저를 통해 소통합니다. 그들은 모든 행동을 우리와 조율합니다. (...) 그들은 해당 공화국에서 무슬림에 대한 임의적인 행위에 반대하여 일어선 평범한 시민들입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전투 작전을 자제하도록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신앙의 형제이며, 따라서 우리는 그들을 돕습니다 - 우리의 경험을 공유하고 그들을 지도합니다. 신의 뜻에 따라, 우리는 올해 그곳에 경험 많은 강사를 보낼 계획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혼자 내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을 돕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3. 4. 재판
2007년 10월, 공격에 가담한 혐의를 받는 59명의 남성에 대한 기소 관련 예비 심리가 시작되었으나, 배심원단 구성 문제로 재판은 1년 이상 지연되었다. 2007년 10월부터 2008년 11월까지 약 1,200명의 시민이 배심원 후보로 소환되었으나, 500명 이상이 법정에 출두하지 않았고, 남은 사람들 중 13명을 제외한 모두가 면제를 요청했다. 2009년 2월, 법원은 배심원 재판을 포기하고 세 명의 재판장으로 재판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7]2009년 3월 날치크에 특별히 건설된 삼엄한 경비 시설에서 본 재판이 시작되어 2011년 6월까지 계속되었다. 당초 기소된 59명 중 한 명이 2008년 구금 중 사망하여 58명이 기소되었다. 이들은 살인, 인질 억류, 테러 및 불법 무기 소지 등 다양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피고인 중 9명은 불법 무기 소지를 인정했고, 1명은 "범죄 무장 단체"의 일원이었음을 인정했으며, 다른 1명은 "부분적인 유죄"를 인정했다. 나머지는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8]
심리 동안 피고인들은 금속 우리에 4~5개 그룹으로 나뉘어 수감되었으며, 각 우리 앞쪽에 설치된 마이크를 통해 법정에 발언했다. 재판을 받는 몇몇 남성은 구금 중 고문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피고인들은 법정 심리를 이용하여 경찰 및 보안 부대의 적들을 위협했다. 2011년 2월, 피고인 중 한 명은 카바르디노-발카리아의 전 내무장관인 하침 쇼게노프를 "그가 살아있을 때" 증언하도록 소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사람들은 이 공화국에서 죽을 것이다. 이 재판이 끝날 때쯤이면, 알라의 은총으로 그들은 모두 파멸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9]
4. 사상자
러시아 정부와 테러리스트들은 사상자 수에 대해 큰 차이를 보였다. 러시아 당국은 공격자 89명이 사살되고 36명이 체포되었으며, 군인 35명과 민간인 14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10] CNN은 러시아 보건부를 인용, 공격과 관련하여 97명이 입원했다고 보도했다.[11]
샤밀 바사예프는 공격자 37명이 사망했고, 연방 측 사상자는 300명 이상이라고 주장했다. 바사예프는 작전 전 정보 유출로 인해 게릴라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비난했다.[12]
4. 1. 시신 논란
뉴스 보도에 따르면, "테러리스트"로 분류된 사망자 중 일부는 실제로 교전 과정에서 실수로 사망한 민간인이었다. 또한 급습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입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남성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보도도 있었으며,[13] 급습 다음 날에 체포된 것으로 알려진 다른 사람들이 사망한 채로 반군으로 제시되었다.[14] 유족들의 공개적인 항의에도 불구하고 시신은 인도되지 않았다.1년 후, 많은 유족들은 공격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92명의 시신을 정당하게 매장하기 위해 당국에 반환해 줄 것을 여전히 요구했지만, 많은 가족들이 시신 반환을 요구하며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유럽 인권 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다. 2007년 6월, 정부는 2006년 6월 22일에 95명의 용의자 시신을 화장했다고 밝혔다.[14][15] 유족들은 남부 연방 지구의 수사관 중 한 명인 알렉세이 사브룰린과 남부 연방 지구 전 부검찰 차장 니콜라이 셰펠의 결정이 불법이라고 주장했다.[16]
5. 러시아 정부의 주장
Прави́тельство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ru는 2005년 10월 날치크 공격이 국제 테러 조직과 연계되어 있으며, 외국 정보 기관 및 비정부 기구(NGO)의 자금 지원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2005년 10월 20일, 러시아 검찰총장 차장 니콜라이 셰펠은 이 공격이 베슬란 학교 인질 사태 등 이전의 테러 사건을 조직했던 "국제 테러 조직"에 의해 조직되었다고 밝혔다.[17] 체첸 출신 국가 두마 의원 아흐마르 자브가예프 역시 국제 테러리스트를 비난했다.
카바르디노-발카르 공화국 내무부 조직 범죄 담당 부국장 알베르트 시자제프는 2006년 2월 14일 날치크 공격이 외국 정보국의 자금 지원을 받았다고 주장했다.[1] 2006년 10월 17일, 러시아 내무부 차관 아르카디 예델레프는 공격 조직자 중 한 명인 안조르 아스테미로프가 남오세티야, 압하스 등에서 전격전을 계획하고 러시아 영토에서 무력 충돌을 확대하려는 일부 국가의 비밀 정보국과 연계되어 있다고 주장했다.[3]
5. 1. 국제 테러와의 연계 의혹
2005년 10월 20일, 러시아 검찰총장 차장 니콜라이 셰펠은 이 공격이 이전에 베슬란 학교 인질 사태, 잉구셰티아 급습, 그리고 카바르디노-발카르 공화국의 ''고스나르코콘트롤''(마약 통제 기관) 공격을 조직했던 "국제 테러 조직"에 의해 조직되었다고 밝혔다.[17] 체첸 출신 국가 두마 의원 아흐마르 자브가예프 역시 이 공격에 국제 테러리스트를 비난했다.전 관타나모 만 수감자 라술 쿠다예프는 공격 준비 및 공격 자체(날치크 교외 하사냐의 도로 경찰 초소 점령)에 참여한 혐의로 날치크에서 체포되었다. 같은 소식통에 따르면, 라술 쿠다예프는 사건 당시 집에 있었다고 주장하며 (그의 형제에 따르면) 친척, 이웃, 언론인, 변호사가 이를 증언할 수 있다고 한다.[18]
무장 세력이 도시의 공항을 점령하고 9.11 테러와 유사하게 그곳의 항공기를 자살 공격에 사용할 계획을 세웠을 수도 있다고 보도되었다.[19]
5. 2. 외국 정보 기관 및 NGO의 자금 지원 의혹
카바르디노-발카르 공화국 내무부 조직 범죄 담당 부국장 알베르트 시자제프는 2006년 2월 14일 날치크 공격이 외국 정보국의 자금 지원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NTV에 따르면, 시자제프는 이 공격이 "카바르디노-발카르 공화국의 폭력 지하 조직 지도자"에 의해 조직되었으며, 이들은 "외국 특수 기관의 강력한 재정 지원을 받았다"고 말했다.[1]ITAR-TASS에 따르면, 카바르디노-발카르 공화국 문화부 종무국장 잠불라트 게르고코프는 공화국의 "폭력 지하 조직"이 체첸에서 활동하는 비정부 기구들을 통해 자금 지원을 받았다고 주장했다.[2]
2006년 10월 17일, 러시아 내무부 차관 아르카디 예델레프는 무장 공격의 조직자 중 한 명인 안조르 아스테미로프에 대해 RIA 노보스티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3]
> 나는 분명히 말하겠다. [안조르] 아스테미로프와 같은 사람들은 남오세티야, 압하스, 그리고 남캅카스에서 전격전을 계획하고, 이라크에서 러시아로 일부 무장 대원을 이동시키기 위해 우리 영토에서 무력 충돌을 확대하려는 일부 국가의 비밀 정보국과 연계되어 있다.
예델레프의 주장은 2007년 6월 4일에 그에 의해 반복되었다. 그는 어떤 국가를 특정하지 않았다.[4]
참조
[1]
뉴스
К рассмотрению дела о нападении на Нальчик в 2005 г. приступит новый состав суд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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